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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쿠르트 윤덕병 회장님의 기업

 

한국 야쿠르트 기업의 창시자 이자 발효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윤덕병 회장님이 
지난달 6월 26일에 노환으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것도 향년 92세의 나이인데요..


한국 야쿠르트 화장님이신 윤덕병 대표이사는 1970년대 기업을 설립해 50년간 이끌어 왔습니다. 
사업의 시작은 60년대말 당시 축산업계에 대한 고민을 해본 결과 발효유 사업에 
달려있다는 선견지명으로 야쿠르트 사업을 시작하게 된건데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했던 부분이라 인식의 변화를 위해서 방문 판매 방식을 
고수 하셨다고 합니다. 


잠깐 발효유의 역사를 들여다 보자만 기원전 3000년 경 지중해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동지중해 지역의 유목민들이 양,부터 해서 염소 , 낙타 말 등에서 짜낸 우유를
시작으로 요거트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문 판매 방식부터 시작해서 간부 사원들과 함께 공장 견학을 시작으로 야쿠르트에 
우수성을 알리기 시작한 결과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타이틀이 생기면서 
한국 야쿠르트 기업의 규모는 날로 더 성장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당시 50명 미만으로 시작했던 판매사원이 지금은 만명이 넘는 규모로 커져서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인기 있는 주부 직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야쿠르트는 1976년엔 중앙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설립 후 20년 만에 독자적인 자체 유산균을 개발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고 필요한 종균(種菌)을 언제라도 자체 조달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였는데요, 
1981년에는 종균 배양에 성공해 유산균 국산화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야쿠르트가 국내에 선보인 지 24년 만인 1995년에는 국내 최초로 유산균 균주(菌株) 개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야쿠르트 임직원들은 “유산균 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할 정도로 획기적 이었다고 하네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으로부터 수입한 종균에 의존한 제품 생산에서 벗어난 기쁨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한국야쿠르트는 40% 안팎의 시장점유율로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야쿠르트 윤덕병 회장님은 그 외에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1975년에 ‘불우이웃돕기 위원회’란 회사 내 임직원으로 구성된 조직을 만들어 불우이웃들을 돕기 시작하셨으며,
1979년부터는 ‘사랑의 손길 펴기회’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운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임직원들 입사와 함께 동시에 가입이 되는 봉사 조직인데 급여의 1%를 기부금 조성에 쓰여지고 있고, 그 외에도 주기적인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010년엔 사재를 출연해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그의 호를 딴 ‘우덕 윤덕병재단’을 설립하셨으며, 2014년엔 보건복지부와 손을 잡고 ‘독거노인 사랑잇기사업’을 시작하여 전국의 독거노인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야쿠르트 윤덕병 회장님의 일대기가 궁금해서 알아본 결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국 야쿠르트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기원합니다.